애플 비전 프로 음질 및 관심사 위주 사용기




1. 비전 프로 스피커의 음질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리가 좋기는 한데 본격 하이파이 오디오와 비교할 건 아닌 듯합니다.

비전 프로 (미국) 정발 직후에 올라온 리뷰에서 음질이 끝내준다는 의견에 예외가 없는 걸 보고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던 음질에 기대감이 생겼었습니다. 어떤 외국인 리뷰어는 에어팟 맥스 또는 프로보다 훨씬 좋다고도 하던데요.

저는 에어팟 맥스를 갖고 있지만 이걸 사무실에서 귀마개로 쓰지 음악 듣는데 사용하지 않아서, 음질 비교는 그냥 집에서 쓰는 홈팟과 했습니다. 그런데 홈팟 못지않게 끝내주는 소리가 날까 싶어서 잔뜩 기대했다가 좀 실망했었네요.

첫째로, 홈팟에서 기대할 수 있는 엄청난 극저음이 나오지는 않고 평범한 수준으로 나옵니다. 이를테면 말러 교향곡 3번 1악장을 홈팟으로 들을 때 마치 대자연이 맥동하는 듯한 거대한 스케일을 작곡가가 각종 타악기의 극저음으로 표현한 게 생생하게 느껴지는 반면, 비전 프로로 들으면 들려야 할 음역대가 제대로 들리지 않고 그냥 평범한 오디오로 듣는 수준으로만 저음 재생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둘째로, 스피커 유닛이 있는 머리 근처에서 음장이 형성되는 문제가 있네요. 헤드폰 종류가 다 이렇기는 한데, 저는 또 애플이 뭔 마술을 부려서 이 문제까지 해결해 버리지 않았을까 싶었죠. 아니었습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제외하면 음질이 꽤 훌륭하기는 합니다만, 결국 음악 들으려면 홈팟으로 듣는 게 훨씬 낫습니다. 다만 여행 중에는 이걸로 음악 들을 것 같습니다. 저는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지 않기 때문에 여행 중에는 그냥 음악을 듣지 않거나 공연장에 직접 가서 듣거나 하는데, 앞으로는 안 그럴 듯해요.

귀를 막는 형태가 아니라서 소리가 새는 문제는, 제가 직접 확인한 건 아니고 어떤 분의 리뷰에서 보니 볼륨이 50% 이상 넘어가면 주변에서 소리를 인지하기 시작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볼륨이 20% 정도만 돼도 제 귀에는 충분히 크게 들립니다. 대중음악처럼 볼륨 레벨이 큰 건 30% 정도만 돼도 이미 소리가 너무 커서 부담스러워요.

그리고 영상을 볼 때에는 공간감 측면에서 홈팟보다 비전 프로가 나은 점이 있습니다. 돌비 애트모스 영상 볼 때 소리가 내 머리 주위에서 휘몰아치는 게 그럴싸한데, 홈팟으로는 이런 게 한계가 있죠. 그래도 저는 공간감을 희생하는 대신에 전체적인 음질이 더 좋은 홈팟으로 영상까지 보고 싶습니다. 문제는… 그게 안 됩니다… 비전 프로 쓰다 보면 당연히 있을 듯한 기능이 빠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즉 비전 프로로 영상을 재생하면서 소리를 외부 기기로 보내는 게 현재의 비전OS로는 안 돼요… 맥과 비전프로를 연결하고, 맥에서 영상을 재생하고, 맥과 돌비 애트모스 지원하는 리시버를 연결하는 식으로 해결 가능하겠지만, 저처럼 홈팟을 쓰는 경우는 이런 해결책도 불가능합니다. 아니, 비전프로에 연결하는 거 맥OS만 가능하게 하지 말고 tvOS도 가능하게 해달란 말입니다아아…

2. 물리 키보드 연결 상태에서 한글 입력

현재의 비전OS에 한글 IME가 없는 건 많이 알려져 있죠. 그런데 앱 차원에서 IME를 구현한 경우 해당 앱 안에서는 한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아이폰/패드 앱 중에 ‘세벌 키보드'(Sebul Keyboard)라는 게 있는데, 비전 프로에서 잘 작동합니다. 물리 키보드를 연결한 상태에서 한글 입력이 가능해요. 그런데 앱 이름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 앱에서 구현된 IME의 한글 레이아웃은 세벌식입니다. 두벌식 한글 쓰시는 분께는 쓸모없죠. 그리고 세벌식 사용자들이 흔히 쓰는 ‘세벌식 390’이나 ‘세벌식 최종’이 앱 기본값이 아니고 뭔 특이한 게 기본값이라서 앱 설정에서 바꿔줘야 합니다.

3. 맥OS 연결시 마우스 문제

맥OS 화면을 비전 프로에 띄우면 맥의 키보드와 트랙패드를 비전 프로 네이티브 환경에서 그냥 쓸 수 있는 것도 많이 알려져 있죠. 그런데 트랙패드 안 쓰는 저같은 사람은 이게 또 문제가 됩니다. 마우스는 맥 화면 안에서만 쓸 수 있고, 그나마도 느려 터졌습니다… 블루투스 마우스 아니고 USB 마우스입니다.

저는 어차피 집에서는 맥OS보다 리눅스를 메인으로 쓰기 때문에, 맥을 켜는 대신에 그냥 리눅스에 리모트 접속해서 씁니다. 어,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 RDP 앱이 비전 프로에서 설치가 안 되네요… 그냥 AnyDesk 씁니다…

4. 누운 직캠 영상

NPlayer 아이패드 앱에서 개별 영상 화면을 돌려서 재생할 수 있습니다. 좌우 반전된 영상을 뒤집어서 재생할 수도 있네요. 이거 몰랐다가 완전 만족하는 중입니다.

영상 얘기한 김에, 비전 프로로 2D 영상만 봐도 화질이 좋아서 만족도가 엄청 높습니다. 이걸로 4K 영상 처음 봤을 때, 2D 영상인데도 눈앞에 사람이 있는 듯한 화질 때문에 진심 충격 받았습니다. 이 정도 화면 사이즈와 해상도로 LED TV를 사려면 1억 이상 생각하셔야 할 걸요…

어, 처음에는 2D 영상만 봐도 엄청 좋았는데요. 그런데 3D영상을 본 순간!!!

5. 비전 프로는 궁극의 눕독 머신이다

제가 비전 프로로 가장 많이 하는 건 책읽기입니다. 배경을 경치 좋은 곳으로 설정해 놓고 누우면 하늘에 거대한 독서창이 떠 있어요. 해상도가 끝내 줘요. 전자잉크 디스플레이 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악보도 일종의 책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음악 하시는 분들이 많이들 쓰시는 forScore 앱이 비전 프로 네이티브 앱으로 있습니다. 단수가 엄청 많은 대편성 관현악곡을 특대 사이즈로 띄워서 보니까 끝내주네요. 물론 누워서 볼 수도 있습니다. ㅎㅎㅎ

6. 어두운 곳에서 사용할 때

비전 프로를 누워서 사용할 때면 그냥 방 조명을 꺼버리고 싶은데요. 비전 프로를 착용하는 시점에서는 일정 수준의 조명이 있어야 기계가 주변 공간을 인지하고 정상 작동합니다. 그런데 그 단계가 지나면 조명을 꺼버려도 됩니다. 적외선 센서가 있어서 완전히 깜깜한 곳이라도 손가락 제스처 인식해요. 단, 누웠을 때 가슴에 뭘 올려놓는다거나 해서 비전 프로 하단 카메라를 가리면 안 됩니다. 적외선 센서가 그 부근에 있기 때문에 그게 장님이 되는 순간 비전 프로 화면이 꺼지고 경고창이 떠요.

7. 아이 트래킹보다 헤드 트래킹을 선호하는 이유

비전 프로가 처음 나왔을 때 화제가 되었던 포인트 중 하나는 아이 트래킹이었죠. 신기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게 눈 피로의 원인이 돼요. 설정에서 아이 트래킹 대신에 헤드 트래킹으로 바꿔 놓으면 눈이 편해집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 트래킹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눈알에 힘을 주기 때문인지, 아이 트래킹을 위해 눈알에 쏘는 비가시광선이 눈 피로를 유발하는 것인지…

그런데 비전OS가 헤드 트래킹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결국 아이 트래킹과 헤드 트래킹을 왔다갔다 하면서 써야 합니다. 그리고 비전OS에 버그가 있어서 벗었다가 다시 쓰면 때때로 아이 트래킹으로 바뀐다거나, 사용 중에 갑자기 헤드 트래킹 상태인데 포인터가 사라져서 안 보인다거나 하는 불편함이 있네요.

AnyDesk 아이패드 앱을 비전 프로에서 쓰면, 마우스 포인터를 손가락으로 집어서 옮기는 식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엄청 쾌적해요. 애플 님들아, 비전OS 네이티브 환경에서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8. 렌즈 대신 안경 쓰고 사용해 봤더니

제가 주문할 때 자이츠 정품 렌즈까지 주문했는데, 배송대행 서비스 말고 미국 사는 누나 찬스를 썼다가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본체는 페덱스로 받고 렌즈는 우체국 배송으로 받았습니다. 우체국 배송이 1주일 이상 늦던데요.

렌즈가 없는 동안 그냥 안경 끼고 사용했습니다. 제가 쓰는 스포츠 글래스는 이걸 끼고 방독면까지 쓸 수 있게 설계된 제품인데요. 비전 프로도 이걸로 사용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옵틱 아이디 사용이 불가하고, 아이 트래킹 정확도가 많이 떨어져서 헤드 트래킹 상태가 아니면 도저히 불편해서 못 쓸 지경이고, 아이 트래킹 상태에서 눈 피로도가 극심하더군요. 정품 렌즈 장착하니까 세상 편합니다…

9. 궁극의 오페라 자막 머신… 이라기에는 반쪽짜리

저는 애플에서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 달린 기기를 개발한다는 소식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오페라 자막 머신으로 사용할 생각으로 기대했었습니다. HP에서 만든 VR 기기를 끼고 유럽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를 본 적도 있고요. (쪽팔림은 본인 부담. 주변에 있던 어떤 사람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 납니다. “He is the most unique neighbor.”)

비전 프로는, 오페라 영상을 보면서 화면 하단에 별도 자막 파일을 띄워 놓고 보기는 좋을 듯합니다. 그런데 오페라 극장에 가서 공연 중에 그러기는 곤란합니다. 그놈의 ‘아이 사이트’ 때문에요. 현재의 비전OS에는 “Theater Mode” 같은 게 없어서, 눈알 보이는 외부 디스플레이를 꺼버릴 수가 없어요. 이러면 공연장에서는 못 쓰죠. 아놔… 비전 프로 산 뒤로 가장 실망했던 포인트.

10. 뭐가 안 되면 껐다가 켜세요

비전 프로 쓰다가 뭐가 잘 안 된다 싶으면 전원을 완전히 껐다가 리부팅하면 웬만하면 해결됩니다. 특히 아이패드 앱 사용하면서 뭐가 잘 안 되면 껐다가 켜보세요.

…초기 OS라서 이런가 봐요. ㅡ,.ㅡㅋ



출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608102?od=T31&po=0&category=0&groupCd=#comment-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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