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화대종주 실패기

겨울 화대종주 실패기



안녕하세요

1월 19일, 아는 분(‘화동’)과 함께 겨울 지리산 화대종주를 하기 위해서 구례로 출발 합니다. ‘화동’님이 백두대간 같이 하신 지인분을 한분(‘애송’님) 더 초대해서 3명이 화대종주를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겨울 화대종주는 제 오랜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혼자 하기에는 부담되어서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같이 종주를 해 주시겠다고 해서 좋은 기회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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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에서 일박 한 후에 새벽에 화엄사에서 출발하는 계획이었습니다. 여름 같으면 밤 늦게 도착해서 대충 버티다가 새벽에 화대종주를 시작하면 되기도 하지만 겨울에는 새벽까지 버틸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찜질방이나 숙소를 찾아 봤지만, 네이버 지도로 찾는데 한계가 있더군요. 구례가 큰 마을일거라고 생각했는데 관광객들에게 특화되어 있어서 그런지 숙소들은 10만원이 훌쩍 넘는 팬션 위주로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한시간만에 지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예약 했습니다 – 1박 3만원짜리 도미토리였습니다. 정 못찾으면 모텔에 숙박해야 되는 상황이었지만 가격도 가격이지만 마지막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이용할려고 했습니다.

화엄사에서 노고단 대피소로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5시에 게스트하우스를 출발하여 화엄사 입구까지 약 30분정도(약 2킬로) 걸어 갔습니다. 몇번 와 본 화엄사 차도라서 그런지 어두운 상태에서도 안내산악회 버스가 섰던 정류장과 식당들이 보이네요.

화엄사에 도착해서 인증 사진들 찍으시고 바로 화대종주를 시작 합니다. 날씨가 상당히 따뜻해서 겨울 같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오늘 화대종주는 대피소에서 1박한다고 생각하니 시작부터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보통은 무박 화대종주 출발 할 때 느끼는 부담감이 없으니 정말 좋았습니다.

연기암으로 가는 돌길에서 화대종주 하시는 여성분 두분을 만났습니다(이분들은 나중에 노고단 대피소에서 주무셨다고 합니다). 겨울 화대종주 하시는 분들은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종주하시는 분들을 만나니 반갑고 왠지 외롭지 않은 종주길이 될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그분들은 나중에 능선길에 못 올라가시고 노고단 대피소에서 주무셨다고 하더군요.

화엄사 돌계단 길을 중간에서 신기하게 하산을 하시는 산객분 한분을 만났습니다. 인사만 하고 지나쳤는데, 이분은 대체 어디서 하산하시는지 궁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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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화엄산 돌계단은 아이젠 없이도 올를 수 있을 정도록 등로 전체가 얼음이나 눈이 없이 길 자체가 깨끗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배낭무게가 10킬로가 넘는데도 의외로 여유를 가지고 걸어서 그런지 힘들다는 생각이 많이 나지 않더군요. 물론 마지막 코재 구간은 엄청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날씨가 따뜻하고 바람이 없다보니 노고단까지는 미들웨어만 입고 계속 진행 했습니다. 중간에 간간이 진눈개비가 계속 살짝 살짝 날리기는 했습니다

노고단 대피소 취사장은 처음으로 이용 해 봤는데, 너무 따뜻하고 깨꿋해서 놀랬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에 새로 개축되면서 시설이 최신식으로 바뀌다 보니 취사장도 아주 좋아졌습니다. 히터를 틀어 놔 주어서 노고단에 올라섰을때 느꼈던 추위를 좀 녹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화대종주 하시는 2분을 더 만날 수 있었습니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연하천 대피소를 향해서

노고단 대피소에서 나오자마자 눈인지 빗방울인지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부터 아이젠을 차고 노고단으로 올라갔는데, 노고단은 완전 안개에 휩싸여서 풍경을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등로를 걷기 시작하니 이제서야 지리산에 들어 왔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등로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어 사각거리는 소리를 낼 정도로 단단하게 굳어 있어 걷기 좋았고, 구간구간마다 상고대가 핀 곳도 있고 눈이 녹고 마른 가지만 남은 곳도 있었습니다. 출발전에 실시간 CCTV를 볼때만 해도 메마른 가지들만 보여서 지리산 능선길에서 상고대를 볼줄 예상을 못했는데, 능선길 초반에서 예상 못했던 상고대를 만나니 너무 좋더군요. 제 개인적인 소원 하나를 성취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임걸령에서 목을 축이고 화개재로 들어서니 산 풍경이 온통 눈밭으로 변했습니다. 멀리 원경은 안보이지만 눈 앞에 보이는 봉우리들은 완전 눈으로 덮힌 봉우리로 변하고 등로에 보이는 나무가지들은 온통 상고대가 피어서 경이로운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화개재에서 토끼봉 가는 오르막길은 숨이 턱턱 막히기는 했습니다.

토끼봉에서 한숨 돌리고 점심을 먹기 위한 연하천 대피소로 향하는 데, 눈이 완전이 함박눈으로 변했습니다. 그냥 폭설 수준이 아니고 바람만 안불지 눈폭풍 속에 갇힌 느낌이 들정도로 많이 내리는 수준이었습니다. 걸으면서 ‘화동’님이 아무래도 내일 통제될 것 같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희하고 같이 걷던 화대종주하시는 분한테 전화번호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저희보다 더 걸으셔서 장터목 대피소에서 주무신다고 하더군요. 저희보다 먼저 출발할테니 통제 여부와 길상태 좀 문자 달라고 했습니다(물론 나중에 들으니 이 분도 장터목까지 진행 못하고 세석 대피소에서 주무셨다고 합니다).

연하천 대피소가 나타나기 바로 전에 있는 나무계단에서 ‘화동’님이 바로 제 눈 앞에서 넘어지셨습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제 눈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크게 넘어지면서 옆으로 굴렀는데, 일어서시면서 바로 스틱을 점검 하시는데, 레키 스틱이 두동강 났더군요. 엄청 크게 넘어지신 것 같은데, 괜찮다는 듯이 바로 일어나셔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걸어가시면서 발목이 약간 안좋다고 하시네요. 그래도 걷는 자세가 이상 없어서 뒤에서 보기에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일단 눈이 많이 내리고 계속 비와 눈을 맞고 오다보니 체온이 많이 떨어져서 바로 연하천 대피소로 들어 갔습니다. 대피소 취사장은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어서 젖은 옷을 벗고 점심 식사 준비를 하고 있자니 체온이 떨어져서 춥게 느껴지더군요. 그나마 젖은 겉옷을 벗어서 덜 춥기는 했습니다.

저희와 같이 걷던 분이 홍어회를 가져 오셔서 다 같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산객분들이 많았다면 민폐가 됐겠지만, 산객이 저희만 있었고 취사장 문도 활짝 연 상태에서 문 바로 앞에서 먹을 수 있어서 냄새가 취사장 안으로 베여 들지는 않더군요. 여기에 따뜻한 라면 국물과 어묵들로 추워진 몸을 뎁히면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저는 핫앤쿡으로 점심을 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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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천 대피소에서 벽소령 대피소로

연하천 대피소에서 나오자마자 눈이 폭설로 변해 있습니다. 완전 함박눈으로 조금만 걸어도 온 몸에 눈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연하천 대피소까지는 계속 뒤에서 저희를 쫓아 오시던 ‘애송’님이 이번에는 연하천 대피소에서 먼저 출발하시더니 보이시지가 않네요. 저희보다 5분정도 먼저 출발 하셨는데, 저희가 거리를 좁히지 못해서 그런지 벽소령 대피소가 가까워질때까지 합류하지 못하고 ‘화동’님과 저하고만 둘이서 계속 산행을 이어 갑니다.

등로에 눈이 많이 쌓이다 보니 평탄한 능선길은 그렇게 예쁠수가 없었지만, 내리막 길이나 바위가 있는 길에서는 눈 밑에 숨어 있는 얼음들이 보이지 않아서 매우 위험 했습니다. 게다가 발목을 다치신 ‘화동’님은 스틱 한쪽만 이용하면서 걷다보니 바위가 있는 구간에서는 여지 없이 미끄러지시고 평지 길에서도 속도가 떨어진게 눈에 띌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가 세석대피소까지 목표로 잡은 5시에 도착하기 힘들것 같았습니다. 벽소령 대피소까지 보통 한시간이면 걷는 구간인데, 이번에는 아무리 눈이 많이 왔다고 해도 한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걷는 중간중간 보이는 절경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뻤습니다. 이제 시작되는 본격적 지리산 능선길의 모습은 제가 다른 계절에 봤던 지리산 능선길이 아니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산에 와 있는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풍경 자체가 이쁘고 길도 달라졌습니다. 시야기 터지지 않아서 원경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눈과 비를 몇시간 동안 맞으면서 걸어서 옷이 완전히 다 젓어 몸의 체온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런 어려움들은 일단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단순히 보이는 설경속에 빠져서 걷는 것만으로 즐거웠습니다.

음정으로 중탈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하니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국공직원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폭설로 인해서 결국 등산로 통제가 내려질 것 같다고 합니다. 지리산의 주능선을 걸으면서 계속 비와 눈을 맞은 상태여서 하드쉘도 다 젖어 버려서 몸이 추워지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화동’님의 다친 발목이 안좋으신것 같아 상태를 물으니 좀 안좋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애송’님이 세석대피소까지 어떻게 갈지 이야기를 하시길래, 아무래도 ‘화동’님 발 상태도 있고 통제도 이뤄진다고 하니 여기서 화대종주 끝내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애송’님도 상황이 많이 안좋다는 걸 느끼시고 동의 하셔서 ‘화동’님이 예약한 대피소와 고속버스 표를 전부 취소 했습니다.

벽소령 대피소에서 음정으로 하산 길은 약 30분정도 내리막을 내려가면 6킬로의 임도가 마을까지 이어집니다. 안그래도 ‘화동’님 발목이 안좋은 상태였는데, 내리막길이 짧아서 다행이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임도길이 6킬로나 이어지니 ‘얼마나 지루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제 예상과는 달리 폭설이 쏟아지니 길 자체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눈이 많이 쌓이면서 온도가 높으니 눈이 뭉치기 시작해서 걷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풍경만으로 따지면 최고였다고 생각되는 코스였습니다.

음정으로 하산하는 길은 대부분의 산객분들이 이용하지 않는 코스이다 보니 이렇게 중탈을 하고 걷게 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마을에 도착해서는 택시(3만원)를 불러서 인래로 이동 했습니다. 버스터미널에서 막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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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보니 15년 된 하드쉘 잠바가 완전히 가수분해 되었습니다. 아무리 고어텍스라도 한나절동안 비와 눈으로 젓은 상태로 산행을 하니 견디지를 못한 것 같았습니다. 실링 부분들이 완전 해체되어서 수선이 불가능 한 상태로 사망 했더군요. 사실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했을 때 하드쉘과 배낭은 눈이 수북히 쌓여서 물에 빠졌다 나온 것 같은 상태였습니다.

제가 겨울 지리산에 다시 간다고 해도 이번 같은 상황에서 재도전 할 수 있을까 생각 해 보면, 아마 힘들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대신에 이번 같이 이쁜 능선길의 설경을 또 보기도 힘들것입니다. 이번에 평생 추억으로 간직할만한 좋은 경험을 했고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에 제 자신에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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