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며
이직을 하면서 지방으로 이주하면서 다시 오디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몇년간 오디오를 접었었는데, 이는 딱히 이전에 살던 오피스텔이 문제라기 보다는 뭔가 그 오피스텔과 오디오가 맞지 않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마도 좁아진 오피스텔로 들어간다는 핑계로 내보낸 차폐트랜스의 부재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오디오를 접으면서도 계속 갖고 있던
뮤지컬피델리티 V90
과
토핑 D70
은 저와 함께 여기 충주까지 이주하게 되었지요.
Musical Fidelity V90 DAC
Topping D70 DAC
1. 서
먼저 스피커부터 찾아야했습니다.
좀 고민을 했지만 제가 워낙 다인오디오를 좋아해서 다인오디오 헤리티지 스페셜로 결정하는데는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7인치 우퍼에 에소타3라니요…
근데 언제나 그렇지만 다인오디오는 울리기 쉽지 않습니다.
약한 앰프에 물리면 저음은 온데간데 없이 펑퍼짐하게 두리뭉실하고 벙벙대는 저음이 나오고,
금속 트위터에 비해 살짝 어두운 듯, 부드러운 고음을 살리고자 매칭하면 왠 까칠한 고양이 새끼마냥 빽빽대기나 하지요.
이번에는 가능한 투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자 이래저래 차이파이로 꾸며서 앰프는 어느정도 잡았는데, 이거 영 DAC가 마뜩찮습니다.
2.
토핑 D70
출시 당시 대단한 스펙이었습니다. 당시 AKM의 플래그십 4497 칩셋을 채널당 하나씩 듀얼로, 풀밸런스인데 가격대가 4백달러인가 5백달러인가 했으니까요. 벨벳 사운드라는 AKM 사운드답게 부드럽고 저역쪽도 좋았습니다. 밸런스단에 물리면 든든하게 때려줍니다. 그런데 하필 비교 대상이 뮤지컬 피델리티 V90이라… V90은 D70에 비하면 저역은 확실히 빈약합니다. 좀 허전하고 무릅니다. 그런데 중역대와 고역대로 가는 이 부분은 D70이 어떻게 비교가 안됩니다. V90은 뭔가 훨씬 깨끗하고 조밀하면서 잘 짜여진 그림을 그려준다고 하면, D70은 좌우 분리도가 더 좋고, 스테이징도 더 넓은 반면에, 상대적으로 건조하고 흐릿합니다.
이게 참 D70한테는 억울한것이 하필 V90이라서 이게 상대적으로 느껴져서 그렇습니다. 문제는 제 귀가 V90을 워낙 오래 들어서 다른건 그래도 괜찮은데 상대적으로 건조하게 느껴지는건 어쩔 수 없더군요. 특히 제가 즐겨 듣는 김광석 박스 세트에서 라이브 공연 곡들을 들어보면 이게 차이가 느껴집니다. 물론 저역대에서는 D70이 확연히 앞서구요.
3. 데나프립스 Ares II
이 DAC 전에 살짝 Auralic Vega가 들락날락 했었지만, 고질적인 OLED번인 때문에 반품했으니 각설하고, Ares II는 사실 그간 오디오계에 벗어나 있는 도중에 각광 받았다는, 그리고 아직도 인기가 좋은 R2R DAC라고 하더군요. 오디오 뭐 별거 있습니까, 궁금하면 들어보는거죠. 게다가 측정치도 R2R 중에서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라고 하니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고음쪽은 두툼하고 롤오프도 되어있고 다 좋은데, 이상하게 높은 중역대에서 치찰음이 콱콱 박히네요? 어디서는 R2R 특유의 정보량이 많은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아니에요 이건… 그냥 치찰음이 있는겁니다. 뭐랄까 좀 잘못 튜닝된 듯한 그런 느낌? 그렇다고 저역대가 빵빵하게 때려주는것도 아니고, V90보다는 낫지만 D70에 비하면 좀 많이 모자란 저역대… 그렇다고 중고음이 V90처럼 잘 짜여진 Coherence를 보여주는것도 아니고, 그냥 칠렐레 팔렐레하는데 그냥 듣기는 좀 편하다가, 치찰음이 있는 곡들에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뭐 그런 소리가 나네요.
4. SMSL VMV D1SE2
이 사용기를 만약에 검색해서 들어온 분들이 있다면 이 DAC가 궁금하다기 보다 Ares2나 V90이 검색에 걸려서 들어오신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지도가 별로 없는 DAC입니다.
저도 원래는 Ares2의 상위기종인 데나프립스 폰투스2를 들여볼까하다가 왠지 백만원 넘는 DAC를 R2R로 또 간다는 부담에, 이미 Ares2의 치찰음에 데인지라 알아보던 중에 발견한 DAC입니다.
SMSL은 요즘에 보면 거의 매달 한두개씩 신품 DAC를 내놓는 분위기인데 자세히 보면 비슷비슷한 스펙에 기능을 가진 DAC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냥 부서마다 한두개씩 DAC를 계속 리뉴얼해서 내놓는건지, 아니면 플랫폼화 해서 여기저기 OEM을 줘서 들여와서 브랜딩만해서 내다 파는건지 솔직히 알수는 없습니다만, 아무튼 명목상으로 SMSL에서 플래그십 브랜드라고 만든 브랜드가 VMV 라고 합니다.
그래서 VMV 라인업 제품들은 전면에 SMSL이라는 로고도 없고 VMV만 있습니다. 벌써 라인업이 꽤 충실해져서 A클래스 파워앰프도 있고, DAC만도 벌써 3~4개가 보이네요. 그중에 R2R도 있습니다만 Audioscience review 사이트에서 혹평을 받은지라 일단 손이 가기는 꺼려집니다. 물론 차이파이 DAC의 대표주자인 SMSL 브랜드 제품을 2백만원이 넘는 돈을 준다는게 좀 꺼려지기도 하구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들인 VMV D1SE2 입니다.
제가 주목한건 일단 최신 ESS Sabre 플랙십 칩셋인 9039MPRO가 탑재되어있고, MQA가 옵티컬/코액셜로 지원이 된다는 점, 후기의 대부분이 뉴트럴에서 따뜻한 성향이다, 그리고 음색 설정으로 Rich한 음색이나 Tube 음색, Crystal 음색 중에 골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구매를 결정했습니다.
9039MPRO는 M이라는 알파벳 때문에 Mobile 용이 아니냐는 오해를 했었는데, 그건 아니고, MQA디코딩을 하드웨어적으로 지원한다는 기능 때문에 붙은 별칭입니다. 하드웨어적으로 메인 DAC칩셋이 지원한다니 타이달을 주로 이용하는 저로서는 솔깃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MQA인코딩의 호불호를 떠나서 말이죠. 그리고 그 MQA가 USB를 사용하지 않는 제가 주로 사용하는 옵티컬/코액셜로 지원이 된다고 하니 블루사운드 노드2와 딱 맞지요.
소리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제 차이파이를 단순히 가성비 때문에 선택하는게 아니라, 음질이나 소리 자체가 좋아서 선택하게 되는 수준에 오른 것 같습니다. 뭐 10만원 언저리에 있는 보급형 DAC들이야 워낙에 좋은 가성비겠지만, 신품가로 100만원 언저리에 있는 차이파이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기는 좀 망설여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중고로 100만원쯤이면 이제 코드 같은 명가의 DAC를 찾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DAC를 들어보면, 아직 음색을 바꾸지도 않았고, 필터 세팅도 디폴트 그대로 듣고 있음에도 여기서 더 어떻게 소리가 좋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건 마이텍 브루클린의 건조하고 분석적인 Sabre칩셋 전형의 소리도 아니고,
D70의 부드럽긴 한데 요상하게 분석적이고 건조한 음색도 아니면서,
V90의 조밀한 중고역과는 다른,
Auralic Vega
에 대단히 근접하면서도, 음색을 바꿀 수 있으니 더 제 취향에 맞게 조정까지 가능한 그런 소리입니다.
뭔가 따뜻하면서도 입자고 곱고 세밀해서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촉촉한듯 하면서 부드럽게 짚어줍니다. 그러다가 잊을만하면 밑에 든든하게 저역이 치고 올라오는데, 과장되거나 불룩 튀어나온 저역이 아니라, 든든하고 단단하면서 슬램이 있습니다.
오라릭 베가
와 유사하게 들리는 중고역의 세밀한 입자는 아마 DPLL 클럭 조정 기능까지 오라릭 베가와 비슷하게 갖추고 있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Ares2가 보여주던 치찰음도 없고 D70에는 약간 밀리지만 든든한 저역대도 갖추고 있습니다. 어디 들어가고 모나고 여위고 튀는 그런 부분은 전혀 없이, Auralic Vega가 보여주던 그 소리에 대단히 근접한 소리가 난다는겁니다.
저에게 Auralic Vega는 좀 특별한 DAC인게, 이걸 처음 들었을때 그때야 비로소 이런게 하이엔드의 소리구나 라는걸 느꼈던 DAC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DAC는 분명히 있겠지만, 그 가격은 절대 베가의 가격 10배 이내에는 있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지금 Auralic Vega에 대한 소리를 묘사해보라고 하면 바로 이 VMV D1se2의 소리를 거의 그대로 묘사하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VMV D1se2는 그 소리에 근접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왜 대단하냐 하면, 오라릭 베가는 출시 당시에도 하이엔드 지향으로 해서 꽤나 비싸게 출시한 (2013~14년인가 $3,500) DAC입니다. 이때만해도 1만달러 넘어가는 오디오 제품들이 그렇게 많지 않던 시절입니다. 그리고 오라릭 베가는 스테레오파일에서도 A클래스, A+클래스에 몇년을 자리했던 DAC였었는데 그 4분의1도 안되는 가격인 D1se2이 거의 따라잡았으니 말입니다.
5. 마무리
요즘 구스타드, 토핑, SMSL 같은 차이파이에서 메이저급 브랜드들의 약진이 눈부십니다. 특히 Audioscience review 사이트에서는 이 세 브랜드를 제외하고 탑 20에 남은 브랜드가 손에 꼽습니다. 그런데 제 기억에 남는 토핑이나 구스타드는 (SMSL이 D1se2가 처음입니다) 정말 말그대로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컨버팅 해주는 기기에 불과하지 오디오적이거나 음악적인 뭔가가 부족했었습니다. 토핑은 원래 분석적이고 정확한 사운드의 대명사였다가 몇년전부터 AKM 칩셋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비로소 이런 이미지를 벗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D70을 V90과 비교해보면, 어딘가 음악을 음악답게 듣기에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저역도 더 든든하고 고음도 더 부드러운데도, D70보다 V90을 훨씬 더 많이 들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 생각을 이제 SMSL VMV D1se2가 바꿔놓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따뜻하게 뉴트럴하면서 어느정도 촉촉하게만 만들어놓으면 음악을 알아서 음악적으로 들리는구나 하는 생각말입니다. 지금처럼 Standard 음색으로 지겹도록 듣다가 지겨워질때쯤이면 Rich 와 Tube로 바꿔볼 생각입니다.
음, 굳이 단점을 좀 찾자면, 인터페이스가 좀 시원찮다는게 그렇습니다. 그냥 구려요. 잘 만든 인터페이스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직관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인터페이스이고, 이는 하드웨어적인 인터페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시커먼 판넬에 희고 가늘고 작은 글씨로 Right Left를 써놨을까요. 그냥 Left는 흰색, Right는 빨간색, 밸런스단에도 글씨 크기에 인색해서 기기들 뒷면에서 이걸 알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것도 사실 글씨를 빨간색, 흰색으로 나눠만 놨어도 인식이 쉬운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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