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클리앙 죽돌이로 살면서 별일이 다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올해는 제게 정말 뜻깊은 한 해입니다.
클리앙에 올린 글이 계기가 돼서 생각지도 못하게 책까지 쓰게 됐거든요!
어제 실물 책을 받아보고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는데 그 자초지종을 짧게(?) 글로 남겨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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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단
모든 것은 1년 전 이맘때 개인적인 경험을 올린 것이 발단이 됐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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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이 우울증 진단을 받으며 겪은 혼란과 병에서 빠져나오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적은 것인데
애썼다는 칭찬과 응원의 댓글이 무수히 달려서 하루 종일 감사한 마음에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그렇게 격려해주시는 분들중에는 책으로 써보지 그러냐는 분도 계셨는데
제가 글솜씨도 없고 의사도 아닌데하며 진짜 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쪽지 하나가 와서 확인해보니 출판사에서 연락이!!
글의 내용이 좋으니 책으로 내보자는 제의를 주셨더라구요
클리앙 눈팅 20년차에 진짜 출판사에서 연락이 올 줄은 몰랐는데요,
(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기쁘긴 했지만 잠깐 생각해보고 사양하는 답신을 보냈습니다.
단지 책을 쓸 자신이 없는것만 아니라 집사람의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겠다는 점이 걱정되더라구요.
그렇게 몇 번을 거절했는데 출판사 대표님의 말씀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족과 환자가 있을텐데 책을 쓰면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어설픈 책이더라도 절실한 분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좋은 책을 쓸 자신이 없는것은 책을 써보고나서 그때 판단하자, 일단 해보자하고 맘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책을 쓰겠다고 말씀드리고 집필을 시작한 게 2022년 12월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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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집필시작
출판사에서는 제가 책을 처음쓰는 걸 알기에 여러가지 팁과 가이드를 해주셨는데
우선은 마음을 편히 먹고 책의 목차부터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주어진 기간은 무려 한달!
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접어두고 프롤로그/1장. 1,2,3../맺음말 이런식으로 구분한 뒤
어떤 내용을 담을지 챕터 제목과 중요내용 키워드를 몇 가지 선정해서 적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웠는데
커뮤니티 글과는 달리 책은 어느정도 분량이 있어야하기 때문에
챕터를 짜임새 있게 구성하면서 분량도 생각해야하고 술술 읽히게 만들려니 여간 고민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어렵사리 목차를 정하고 출판사에서는 굉장히 잘 썼다고 칭찬을 해주셨는데 아마 도망갈까봐 기운을 복돋아주신것 같아요 ㅎㅎ
출판사에서는 계속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시는데
뽕이 차오르긴 했지만 글 쓰는 것이 힘들어서 두어줄 적고 다시 읽어보면 이상하기 일쑤라 너무 창피했습니다.
지우고 다시 쓰다보니 진도가 안나가서 힘든 것도 문제였지만,
써야 되는 분량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니 더 겁을 먹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300페이지짜리 한 권 분량이 나오려면 A4 10pt로 130장, 글자수로는 16-17만자가 필요한데
이것을 직장생활과 병행하면서 작성하려니 겁이 덜컥났습니다.
일 끝내고 퇴근해서 쓰기 시작하면 하루에 두어 시간 쓸 수 있겠다 했는데
실제로는 종일 매달려있어도 한 장을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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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위기
회사업무가 바빠지고 해외출장을 가거나 지방출장을 가는 등 물리적으로도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집필은 위기를 맞았습니다. 번개같이 끝낸 목차와는 달리 한달이 지나도 챕터 하나를 마치지 못했는데
출판사에서는 6개월 정도면 다 쓰실수 있을거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해주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6개월이 거의 다 가도록 진도를 맞추지 못해 지지부진했는데요,
계약한 기간 다 돼가서 걱정이 클 때 출판사 대표님이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괜찮습니다 작가님, 마감때가 되면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 법이니까요 (웃음)”
아니 그럴리가요…….;;;
만화가들이 마감때 담당한테 느끼는 감정이 어떤건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ㅋ
아무튼 저는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 달 동안 아예 잠을 안자고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이 많은 관계로 저녁 10시 11시쯤 퇴근을 하면 그때부터 새벽 6시까지 책만 쓰는건데요,
처음에는 꽤 폭발적인 스피드를 냈지만 긴장된 자세로 오래 앉아있어 그런가
각종 근육통과 담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 컨디션이 악화되었고
나중에는 코로나까지 걸리면서 최악의 상황을 맞았습니다.
잠을 너무 안자니까 글이 써져있긴한데 나중에 보면 언제 이런걸 썼나 기억이 안날 지경이었습니다.
전문작가님들은 이렇게 어려운 일을 평생하고 계시다니 얼마나 위대한 분들인지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이때 저는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영화 샤이닝에 나오는 잭처럼 신경질+탈모+피골상접 수준의 상태였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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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무리
결론적으로는 출판사 대표님의 말이 맞았습니다.
저는 진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막판에는 뭘 어떻게 썼는지 기억도 안나게 미친듯이 글을 썼는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집필용 노트북을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라
새로운 노트북과 키보드를 사서 기분을 내가며 계속 쓰기도 했습니다(돈이 ㅠㅠ).
나중에는 코피도 막 터지고 손가락이 아파서 부드러운 키보드로 바꾸기도 하고
와이프가 다시는 책 쓴다고 하지말라고 왜 사람 걱정되게 이렇게까지 하냐고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거의 완성돼가는 원고를 보니까 감격스러운 부분도 있었는데 피곤이 잊혀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출판사에 초고를 보내는 날은 엄청 흥분이 됐는데 너무 기분이 좋아서 모공에도 자랑아닌 자랑을 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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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EN
)
한마디로 “내가 이걸 해내다니!” 같은 느낌인데요,
책을 쓰는게 힘들긴 해도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서 이런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니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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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편집/교정
출판사 대표님과 에디터님이 출동하기 시작하셔서 초짜 작가(?)의 글을 여러가지로 봐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책에서 더 힘줘야되는 부분, 부족한 부분, 분량도 생각하가며 덜어내야 되는 부분 등을 날카롭게 지적하시는데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쓰는 책이 아니라 출판사와 팀에 돼서 더 좋은 책, 더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드는 느낌입니다.
빨간펜으로 죽죽 그어서 편집자의 코멘트가 적혀있는데 그중에서도 근거나 출처를 보강해야할때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제가 집사람 투병중에 참고했던 여러 논문이나 저작물들은 책을 쓰려고 본 것이 아니라서
다시 찾아내서 제목과 출처를 다시 일일이 적어야하다보니
초고를 마친 이후에도 시간과 노력이 적잖이 투입됐습니다.
머릿말과 맺음말에는 주인공인 집사람이 글을 써주기도 했는데요,
한줄 한줄 적어가며 어떻게 이어나갈까 서로 이야기도 하고 부부사이가 돈독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이 과정까지 마치고 나니까 거의 추석 그러니까 9월이 되었는데요,
이때부터는 직장일이 더 복잡해지는 바람에 눈코틀새 없이 바쁘게 지냈는데
일과 집필을 병행하며 익힌 여러 스킬이 업무에도 도움이 돼서 굉장히 많은 업무를 창의적?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노력한 게 어디 안가고 다 삶의 밑거름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 한번 클리앙하길 잘했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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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출간의 순간
완성된 원고를 바탕으로 실제 책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요,
책의 제목과 표시 디자인, 내부 구성 등의 편집작업이 진행되면서 상상만 하던 책의 형태가 잡혀가기 시작합니다.
어찌보면 출판사의 역량이 가장 크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부분인데요,
A4 용지로 죽 써내려간 평면적인 원고를 읽기 편하고 눈에 쏙 들어오는 책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진짜 책의 모양을 한 PDF 샘플을 받아보니까
단락 구성과 폰트 종류, 크기 등이 잘 돼있어서 정말 술술 읽히더군요.
(
덜떨어진 원고도 명저처럼 보이게 하는 마법 ㄷㄷ
)
실제 책을 손에 쥔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후인 1월 11일, 바로 며칠전인데요
이때의 감격은 뭐라 말할 수 없는 특이한 것이었습니다.
아마 첫경험이고 쓰면서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것일 수 있는데
책을 보기만해도 약간 뭉클한게 자식 바라보는 부모 같고 그렇더라구요 ㅎㅎ
이때부터는 책이 예스24나 교보문고 등 온라인/오프라인 서점에 등록되기 시작하는데
정식으로 “작가”라는 이름으로 제 이름이 등재되어 검색도 되고 이런저런 서평이나 리뷰가 달리기 시작합니다.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면 출판사에서 만들고 디자인한 판매 페이지가 나오는데
여기에는 책의 내용을 요약, 강조해서 핵심이 무언지 전달하는 각종 문구와 이미지가 잘 돼있어서
무슨 책인지 한눈에 파악이 되더군요. 또 한번 놀라고 감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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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주변의 반응 (현재진행형)
거의 1년 가까이 죽어라고 책을 썼으니 직장에서도 제가 책을 낸 것을 많이들 알게 됩니다.
진심으로 출간을 축하해주고 잘했다고 애썼다고 응원과 격려를 해주는데 고마워서 눈물날 지경입니다.
(전에 올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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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한 사람들 위주로 책을 샀다고 잘 봤다고 너무 잘썼다고 얘기 해주기도 하고
거꾸로 제가 선물하기도 하고..
회사 인트라넷에 나눔 이벤트를 하기도 했는데요,
나눔 이벤트는 생각지도 못한 뜻깊은 일이 많았습니다.
제 책 한 권 덜렁 손에 쥐고 나갔는데
고맙다고 거꾸로 저에게 영양제를 답례로 주시거나 본인이 쓰신 책을 가져와서 주시거나 하는 등
고마운 경험을 또 하게 됩니다.
요며칠은 장문의 카톡을 몇번이나 받았는데
우울증을 앓았거나 가족이 걸려서 고생했는데 제 책을 보고 도움이 됐다며 고맙다는 내용이어서
책 쓴 보람을 맘속깊이 느꼈습니다.
아마 책을 안썼으면 아니, 클리앙을 안했으면 이런 좋은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을것 같아서
‘클리앙하기를 잘했구나’
‘책 안썼으면 후회막심이었겠다’
글재주는 없지만 진정성있고 정직하게 쓰려고 노력한 기억들,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기쁨에
감사하고 보람찬 마음으로 가득한 새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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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1. 클리앙에 올린글을 통해 출판제의가 왔습니다
2. 주저하다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힘들었지만 출판사의 도움이 있어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3. 책을 쓰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책을 통해 다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습니다.
클리앙이 고향인 책이 나왔다는 소식도 전하고 그 과정을 적는다는 것이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
멋쟁이 클리앙 여러분께 감사 인사 올리며 이만 물러갑니다,
감사합니다!! (_ _)>
출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528046?od=T31&po=0&category=0&groupCd=#comment-po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