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감상




클리앙에 아주 오래전 감상을 올린되로 정말 오랜만에 올려봅니다.

페북 포스팅을 올리느라 반말임을 양해부탁드립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이하 고레) 감독 작품으로는 ‘아무도 모른다(2004)’를 시작으로 7번째 감상작이니 나도 어지간히 고레감독 팬이였나보다. 사실 직전작품 ‘브로커’가 좀 시큰둥해서 – 다분히 한국적 현실과 화면이 그의 결은 아니었지 싶다 – 볼까 말까 주저 하다보니 늦어진 감도 있었고.

이미 많은 분들이 소감을 올리신 뒤여서 뒷북 감상이 될까 하여 좀 드라이하게 생각나는 대로 끄적여 보는 걸로 (하려 했으나 그러기엔 정말 좋은 작품이다 보니 너무 길어졌다) 감상을 대신하고자 한다. 먼저, 작품의 특성 상 이 포스팅을 읽으면 “절름발이가 카이저소재야” 정도로 김이 빠질 수 있으니 앞으로 보실 분들은 그냥 넘어가 주십사  한다. 그만큼 꼭 보시길 바래서 하는 말이다.

1. 고레 감독은 극단의 상황을 너무 차분히 그려내는 (그래서 더 처연한) 능력이 있다. 내가 보았던 상당수의 작품들이 그러한데, 이 작품 역시 그러했다. 뭔가 속에서 꾸역거리며 올라오는 처연한 슬픔으로 한숨이 쉬어지지만, 정작 스토리는 너무 당연하고  덤덤하게 마무리 지어 지는게 고레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듯 했지만 이 작품 만큼은 좀 다르게 다가왔다. 작품 말미의 푸르고 찬란한 빛에 한결 마음이 편했다고나 할까… (난 불안하지만 매우 희망적인 엔딩으로 받아들여졌다)

2. 이 영화는 다분히 사카모토 유지와 고레감독이 작당한 사기극이다. 이야기를 세사람(미나토 엄마, 호리선생, 미나토)의 관점으로 분할하여 순차 배치함으로써 각각의 관점에서는 “사실”인 것 같지만 실은 분절된 시각을 통해 관객들은 완전히 속여버리는, 기막히게 의도된 장치가 되어준다. 그런 점에서 많이들 비교되는 <라쇼몽>과는 다르다.

3. 분절되고 제한된 시야는 사각을 만들어내며 사각의 정보는 전달될 수 없을 뿐더러 제대로 이해될 수도 없으니 마치 이 빠진 일그러진 그림처럼 온갖 오해와 편견을 야기하게 되는데, 고레 감독은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제목인 <괴물>과 이 사각으로 일그러진 그림을 통해 ‘누군가가 괴물일거야’에서 시작하여 어쩌면 모든 이들이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괴물찾기 놀이’에 동참시킨다.

4. 이러한 세상이 이미 만들어낸 편견은 아직 어리지만 같은 세상에 노출된 미나토에게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3장은 그런 미나토에게 요리는 잠시 괴물로 비추어지지만 차차 가리워진 사각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미나토의 오해와 혐오는 신뢰와 사랑으로 변하여 비로소 진정한 친구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는 일부에서 이 둘간의 사랑을 서둘러 동성애라고 정의하고 퀴어영화로 분류해내는 시각 역시 이 세상이 만들어낸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어리고 순수한 두 소년간에 서로를 지켜주고 싶은 이 사랑을 감히 무엇이라 정의하고 싶은가. 이리 투명한 순정의 사랑을 지켜 보는게 정말 얼마만인가…

5. 아이러니하게도 위에서 언급했던 ‘사각지대’의 의미는 두학생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의 사연에서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교장선생님은 실수로 자신의 차를 후진시키다가 손녀를 치어 죽게 했지만 남편이 자신의 과실로 자수하여 복역 중이다. 즉, 교장선생님의 순간적인 ‘사각지대’가 만들어낸 되돌이킬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인 것이다. 때문에 1장에서는 괴물로 보였던 교장선생님이 실은 미타토가 거짓말을 했음을 이미 알아 차릴 수 었었고 또 그런 미나토를 이해했기에 서로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한을 악기를 불어 날려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보였던걸까… 그런 점에서 이작품의 가장 놀라운 배역은 단연 교장선생님을 연기한 다나카 유코였다고 본다. 만약 이 영화에 4부가 있다면 분명 교장선생님의 이야기기로 채워졌을 것이다. (남편면회장면 + 미나토와의 악기실 장면 + 마지막 폭우속 장면이 결국 2.5부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Manchester by the sea>의 리 첸들러를 떠올리게 한다.

6. 끝으로, 언급을 안할 수 없는게, 아무리 고레감독이 아역배우 조련사라고는 하지만 요리를 분한 히이라기히나타(초딩이란다)는 정말 어디서 이런 아이를 구했나 싶을 정도로 완전한 표정 연기를 소화해 내었다. 특히 등교길에 친구들한테 이지매 당해서 벗겨진 신발을 태연하게 다시 신으며 호리선생에게 ‘그냥 신발이 벗겨졌어요’하는 장면은 순간 소름과 애처러움이 동시에 느껴지기도 했거니와 폐열차안에서 미나토를 갑자기 껴안는 장면에서는 순간 오래전에 보았던 렛미인(2010)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천사의 얼굴을 한 괴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감독과 작가는 확실히 의도적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괴물은 누구일까’를 유도하였고  그런 생각에 매몰당한 우리 스스로도 결국 괴물이 될수 있음을 의도했다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진정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랬던 우리들에게 그 숨겨진 사각지대를 마주시킴으로써 괴물이 아닌 그저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고 싶은 두사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는 완전히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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