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6일 인텔이 가자지구와 가까운 이스라엘 키르얏 갓(Kiryat Gat)에 250억달러(약 32조원) 규모의 신규투자를 발표한 것은 놀라움이었다. 지난해 6월 처음 알려진 이 투자 계획은 넉 달 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면서 실행 여부가 불확실했다. ‘아마 연기하거나 취소하겠지’라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아무리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군사력에 차이가 난다 해도 엄연한 전쟁 상황인데,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키르얏 갓은 가자지구에서 42㎞ 떨어져 있다. 인텔은 이미 그곳에 10나노미터(1나노미터=10억분의1m) 칩을 생산하는 공장 팹28을 가동하고 있는데, 이번에 2028년 완공을 목표로 신규 파운드리(위탁생산) 라인인 팹38을 건설한다는 얘기다.
2028년 목표 파운드리 라인 팹38 건설
인텔의 신규 공장은 1.8나노급 초미세 공정보다 더 미세하다는 ‘포스트 18A 공정’을 도입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와 2위인 삼성전자는 3나노 제품을 양산하고 있고, 2나노 이하 공정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다. TSMC나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강력한 추격자인 인텔의 움직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인텔은 1974년 반도체 디자인센터를 건립하면서 이스라엘에 진출했다. 지금까지 500억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현지에서 1만명 이상을 고용했다. 예전 CEO(최고경영자)였던 앤디 그로브가 유대인이란 점도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하이테크가 포인트였다. 인텔은 이스라엘 스타트업(Start-up·창업기업)에 늘 눈독을 들이고 있다. 가령 2017년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차량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모빌아이(Mobileye)를 153억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이번 투자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의 화답도 크다. 인텔이 팹38 건설에 250억달러를 투자하면, 이스라엘 정부는 이 금액의 12.8%에 해당하는 32억달러의 보조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스라엘의 표준 법인세율은 23%인데, 인텔이 납부할 법인세율은 7.5%다. 개별 분야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는 이스라엘 법에 따라 기업들이 큰 혜택을 받는 것이다.
“이스라엘 경제 신뢰한다는 뜻”
이스라엘 입장에서 보면 경제적 가치는 물론, 안보적 가치도 높아진다. 대만의 경우 군대보다도 TSMC의 첨단 공정이 더 든든한 국방 자산이란 말이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도 인텔 같은 세계적 기업을 많이 품고 있는 것 자체가 국방력이 된다.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부 장관은 “이스라엘이 절대악과 전쟁 중인 시점에 이런 투자 결정은 이스라엘 경제를 신뢰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1948년 건국한 이스라엘은 끊임없는 전쟁과 테러 속에서 ‘창업국가’ 또는 ‘작지만 강한 나라’라는 패러다임을 통해 지금까지 50배 이상의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석유를 비롯한 천연자원이 부족한 탓에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한 인력 개발에 주력했다. 근로자 1만명당 과학기술자가 140명으로 미국(85명)과 일본(83명)을 웃돈다. 2022년의 경우 GDP(국내총생산) 대비 R&D(연구개발) 지출 비율이 4.8%로 세계 1위다. 테크니온·히브리대·와이즈만연구소 등은 세계적 연구 기관이다. 세계 100대 IT 기업의 75%가 연구개발 센터를 두고 있다. 지금도 매년 800~1000개의 기술분야 창업이 이뤄지고 있고, 누적 스타트업 수는 9500여개에 이른다. 여기에서 만들어진 탁월한 신기술 때문에 전 세계 기업들이 투자·인수·업무제휴 등을 위해 이스라엘로 몰려든다.
미국의 그래픽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생성형 AI(인공지능) 수요가 늘어나자 수억 달러를 들여 이스라엘에 현존 최강의 슈퍼컴퓨터 ‘이스라엘-1’을 구축하고 부분 가동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1’은 최대 8엑사플롭(exaFLOPS·1초당 100경회 연산) 수준의 처리능력을 제공하는데, 이것은 바로 엔비디아가 2019년 68억달러에 인수한 이스라엘 반도체 기업 멜라녹스가 개발한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퀄컴은 지난해 이스라엘 차량용 반도체 기업 오토톡스를 4억달러 정도에 매입했다. 오토톡스는 2008년 설립된 차량·사물통신(V2X) 분야 반도체 설계기업으로, 차량 간의 충돌을 방지하고 이동성을 개선하는 솔루션을 공급하는 곳이다.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차량이 늘어나면서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2021년 530억달러 규모에서 2025년 1038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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