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를 신혼여행으로 고른 이유는,
결혼하고 나서 한동안은 ‘처가’에 있어야 그나마 장인어른을 비롯해 친척분들과 교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같은 첨 보는 육지 사기꾼에게 똘(딸)을 빼앗기는 것도 서글픈데 1년이나 볼 수 없다고 하니..아버님의 기분이 영 안 좋아 보였고, 여행 이후의 제 삶도 생각해야 했기에 제가 머물 곳은 제주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그거지만 아직 여행 준비가 제대로 안 되어 있었습니다.
우선, 총 1년을 목표로 한 여행 기간중 앞의 3개월을 여행이 아니라 어학연수로 바꿔야 했습니다.
회사에 호기롭게 “저는 세계 여행을 갈 겁니다”란 꿈같은 퇴사 사유를 밝히고, 정말 차곡차곡 업무에 배제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저보다 나이가 많고 경험 많은 동료가 저에게 차라리 어학연수를 앞에 붙이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이유인즉슨, 아직 젊다고 할만한 나이지만 여행이 끝나고 난 뒤 재취업에 그나마 유리할 것이라는 부분과 아직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지 않았냐, 그리고 혹시나 영어가 더 늘면 좋지 않겠냐 하는 여러 가지 이유였습니다.
막막한 건 여행 전이나 후나 마찬가지인 상황이고, 또 고마운 조언이었고..
무엇보다 어른들이 좋아하셨습니다.
그런데 어학 연수라고 그냥 딱! 하면 땋!하고 나오는 게 아니기에 부랴부랴 유학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즉, 결혼 준비가 허술한 만큼 집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경비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여행 본연의 고민과 더불어 어학원을 알아보고, 그것마저 준비해야 했는데…
(그 상황에 여자친구는 미국으로 여행을 간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래저래 어학연수와 관련해서 꽤 큰 목돈이 들고 나니, 그제서야 이래도 되나 하는 뭔가 잘못 되가고 있다란 느낌이 많이 찝찝했습니다.
…
그 와중에 몇 가지 여행에 세워진 원칙이 있다면…
– 동양은 나중에도 갈 수 있으니 먼 거리의 권역을 간다.
– 유럽을 먼저 가서 북아프리카까지 보고, 북미로 들어가 남미로 빠지고 이스터 섬을 거쳐 뉴질랜드, 호주에서 일본, 한국으로 컴백한다. (이렇게 안되었습니다.)
– 가능한 위 코스에 계절을 맞춰 두터운 옷이 필요 없게 한다. (옷을 계속 사야 했습니다.)
– 일 숙박은 10만원 수준으로, 백패커 기준으로 엄청 높지만 신혼 부부치곤 그래도 품위를 유지하자
(국가마다 뭔가 너무 기준이 다르단걸 나중에 알게 됩니다만..)
– 부모님께 자주 영상 통화를 하자
– 시작은 터키에서 그리스, 그리고 어학 연수를 하게 되는 영국, 켄터베리로 들어간다.
머 이 정도 였습니다.
….
그런데 정작 결혼을 하고 나서 그 날은 어디로 가지? 하는 1차원적인 문제도 고민을 못한 상태여서 급하게 남대문에 호텔을 하나 잡고 부부가 된 첫날 밤은 그리로 가자라고 결정 했습니다. (이미 여자친구집은 다른 사람이..)
결혼식은 피곤에 연속이었고, 그나마 같은 샵에서 박미선 씨가 우리를 잘 살라고 축복해줬다란 기억 외에 다른 건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호텔로 와서, 아내의 머리에 꽂힌 수백 개의 실 핀을 빼내느라, 감사 문자도 대충 돌렸습니다.
다음날, 저녁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그쳤고, 우리는 부부로서 첫 아침을 맞았습니다.
시청 근처에 있는 시티은행에 가서 여행용 계좌와 체크카드를 발급 받고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하자 했습니다.
가는 길, 시청 광장에 노란 세월호 리본을 보며 착잡했던 기억이 워낙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결혼 후에도, 결혼과 관련된 이런 저런 마무리를 해가며 정작 여행은 다시 후순위가 됩니다.
그리고 그날 밤, 결혼 반지를 호텔 객실 금고에 두고 왔구나 알아채고 깜짝 놀라서 호텔에 연락을 했습니다.
호텔에서는 다른 사람이 투숙 중이란 이야기와 그 사람이 나가면 찾아 보겠단 이야길 듣습니다.
찝찝함 속에 저희는 제주도로 신혼 여행을 갔습니다.
결과적으로, 몇 번이나 제주에서 연락했지만 금고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였고, 반지는 영영 잃어버렸습니다.
다만, 사이좋게 두 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마음에 상처도 두 배지만 누군가 책임을 지지는 않게 되어 추가적인 데미지가 없었습니다.
….
제주도의 첫 숙소는 포도 호텔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서도 첫날 이기에 그래도 좀 좋은 곳에서 시작하자고 했고
이후에는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게스트 하우스나 저렴한 호텔 등에서도 생활하다가, 저희 따라 제주까지 따라 온 철부지 과장님과 셋이서 놀다가 처갓집으로 들어갔습니다.
포도 호텔에선, 결혼 선물로 호텔에서 준 와인을 옆에 테라스에 먹겠다고 해질 무렵 테이블에 세팅을 하고 신혼부부의 기분을 냈습니다만…
우리가 마신 레드 와인만큼 모기도 우리피를 섭취했습니다.
게다가 밤새 고장난 에어컨은 기사가 와서 수리를 했음에도(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가려움과 흘러가는 물소리로 밤새 잠을 뒤척였지만 아내는 참 잘 잤습니다.
그렇게 제주도에서의 여행 후, 저희는 중국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북경을 거쳐 우루무치에 멈춰 있다가 이스탄불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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