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여러분들의 비위와 저의 민망함을 고려하여 사진이나 영상 자료는 첨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조금 불쾌한 기분이 드실 수 있습니다. 미리 사과드립니다.
얼마 전에 화장실에 갔다가 고개를 휙 돌리는데 귀에서 뭔가가 툭 떨어졌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대왕귀지였습니다. 너무 놀랍고 한편으로는 신기해서 손으로 들어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이즈의 귀지가 사람 귓속에 숨어있었을까요? 저 또한 보통사람들처럼 샤워 후에 면봉으로 귓속을 닦고 -물론 이비인후과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반대하지만요- 아침 출근 전에도 머리를 감은 후에 귓속을 한번 닦아줍니다. 동양인들은 보통 서양인들과 다르게 귀지가 습식이 아니고 건식이라 귀지가 작은 부스러기처럼 생겼지요. 커널형 이어폰을 사용하면서 귀지가 조금씩 묻어 나오는 게 너무 신경 쓰여서 귀청소를 자주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런 대왕귀지가 숨어있었다는 사실이 창피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혼자가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 이 대왕귀지가 툭 떨어졌으면 그 민망함은 실수로 방귀를 뀐 정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나마 혼자 화장실에 있을 때 제 귓속에서 탈출했으니 대왕귀지에게 조금은 감사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문득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받을 때처럼 내시경 같은 것으로 귀를 살펴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비슷한 물건이 분명 있겠지 하고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역시나 세상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물건을 구할 수 있는 알리에 다양한 브랜드의 내시경 귀이개들이 있었습니다.
가격은 만 원 정도로 생각보다 많이 저렴했습니다. 비슷한 제품을 국내에서는 조금 더 비싼 가격에 팔고 있었구요. 저는 미사용 제품을 당근에서 5천 원에 샀습니다.
내시경 귀이개는 인터넷으로 사진을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반적인 귀이개의 모양과 흡사한데 귀를 파내는 용도로 쓰이는 효자손처럼 생긴 금속 막대 아랫부분에 자그마한 카메라가 있고, 그 주변에는 역시 자그마한 LED 조명들이 원형으로 감싸는 형태로 달려있었습니다. 그리고 금속 막대 끝 귀를 파내는 부분에 장착할 수 있는 다양한 모양의 자그마한 실리콘 팁들이 들어있었습니다. 밑에는 충전포트가 있는데 C타입으로 충전이 가능했습니다.
핸드폰에 관련 앱을 설치한 후에 와이파이에 연결하면 귀이개와 핸드폰을 무선으로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귀이개에 달린 카메라가 촬영하는 것들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실시간으로 출력되는 것이죠. 거기다 카메라 주변의 LED조명들이 어두운 귓속을 밝게 비추어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연결을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곧장 귀이개를 귀에 넣어봤습니다. 그리고 귓속 모습을 보고 저는 흠칫 놀랐습니다. 무수히 많은 검은 털들이 돋아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귓속이 아닌 콧속에 집어넣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털 주변으로 먼지처럼 귀지가 들러붙어 있었습니다. 코털이 코에 들어가는 먼지를 차단한다면, 귀에는 귀털이 그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리조리 각도를 비집고 더 깊숙이 들어가보니 막다른 곳이 보였는데, 아마 이 부분이 고막인 것 같았습니다. 여기를 건드렸다가는 몹시 후회할 것 같아서 조금 뒤로 물러났습니다.
제품 사용 후기들 중에는 화질이 좋지 않다는 글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면 귀를 청소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이보다 화질이 더 좋았다가는 모낭충도 보일 것만 같았습니다.
카메라 초기 세팅값 때문인지 실제보다 화면의 채도가 더 높았습니다. 때문에 귀지가 실제보다 더 노랗게 보였는데, 그래서인지 귀에서 귀지를 빼내는 것이 마치 광산에서 금을 캐내는 것 같았습니다. 어릴 적에 금광을 찾아서라는 게임을 재밌게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귀 보호를 위해 금속 막대 위에 실리콘 팁을 씌우고 귀를 파내게끔 되어 있었습니다만 정작 실리콘 팁을 씌우면 귀지가 잘 떼어지지 않았습니다. 고무장갑을 끼고 접시에 붙은 밥풀을 떼어내는 기분이랄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금속 막대로 귓속을 긁어내는 것도 몸에 좋을 리 없으니 사용시에는 각별히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귓속 탐험을 하고 나니 카메라를 다른 곳에도 넣어보고 싶어 졌습니다. 코는 귓속보다 털이 훨씬 굵고 촘촘해서 조금 징그러웠습니다. 입에도 넣어봤습니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 치아 안쪽 치석들이 가득한 것을 보고 바로 스케일링 예약을 했습니다. 두피도 검사해 봤습니다. 생각보다 모발 간격이 빽빽한 것을 보니 조금 흐뭇했습니다. 이 간격이 넓어지기 전에 얼른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결혼할 결심을 하게 만들어준 대왕귀지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출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511878?od=T31&po=0&category=0&groupCd=#comment-po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