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2월 23일에 다녀 온 겨울 덕유산 육구종주 후기입니다.
들어가며
이번 산행 출발 하루전에 감기에 걸리는 악재가 발생 했습니다. 산악회 버스 예약을 취소해야 고민을 잠깐 하기는 했지만 이미 마음은 육구종주를 하기로 마음 먹은 이상 몸져 눕지 않은 이상 가 보기로 합니다. 사실 이 결정이 최악의 결정이자 최고의 결정이었습니다.
새벽 2시 40분, 육십령에 도착하니 다른 산악회 버스도 한대 더 있었습니다. 저희 버스보다 일찍 도착한듯이 보였는데, 그 버스의 산객분들은 이미 정비를 마치고 산을 오르시고 계신 듯 했습니다. 육십령은 항상 새벽에만 와 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감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어두컴컴한 풍경 속에 그나마 달이 떠 있어서 어슴프레한 육십령 모습과 등산로 입구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삿갓재 대피소를 향해서
할미봉 가기 전까지는 등로가 평이 합니다. 종주하는 날 날씨마저 평온해서 일기예보 상으로 초속 1 ~ 2미터 정도 분다고 되어 있었지만, 바람은 거의 느낄 수 없어서 영하 15도의 날씨였지만 따뜻하다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제 기억상으로는 할미봉 가기전에 호지케스 박힌 암릉길이 나오면 본격적인 네발 등산이 시작되면서 남덕유산까지 혹독한 육구종주 길이 시작되었던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호지케스 박힌 암릉 없이 밧줄과 계단길이 나타나고 바로 할미봉으로 올라 섰습니다. 등로가 정비된건지 제 기억이 착오가 있는지 알수 없네요.
할미봉에 오르자 본격적으로 시작될 육구종주 길이 두려워집니다. 게다가 이때부터 감기 기운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할미봉까지는 그래도 선두그룹 분들 후미에 붙어서 열심히 걸었는데, 결국은 체력 저하로 그 후미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산행을 진행 하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안내산악회로 가게 되면 낮에는 다들 각자 도생하는 스타일이래도 야등 구간에서는 대부분 암묵적으로 뭉쳐서 다니게 됩니다. 아무리 산에 익숙한 사람이고 등로를 잘 알고 있더라도 어두운 밤에는 길 찾기가 쉽지 않고 여러 위험 요소들이 있어서 최대한 앞 사람과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진행하게 됩니다. 저도 힘이 들더라도 그룹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이날은 도저히 체력이 안되는 걸 느껴서 포기하고 단독 산행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제일 험한 구간이 서봉에서 남덕유산이었습니다.
작년에 서봉에 오를때만 해도 앞사람의 불빛이 서봉 정상에서 반짝이는 걸 보면서 거리 파악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얼마나 간격이 벌어졌는지 불빛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저보다 쳐진 후미 불빛이 보이는 한데, 그분들하고 간격은 얼마 안되는 것 같아서 기다렸다 갈려다가 지금 체력으로는 같이 움직이다 결국 또 쳐질 것 같아서 후미 그룹이 저를 쫓아 오기를 바라면서 서봉에 올라 섰습니다.
그나마 위안은 작년에 경험했던 서봉 구간의 태풍급 바람이 올해는 애교 수준으로 불어서 덜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서봉 구간의 칼바람은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작되는 하산 구간은 정말로 지옥이었습니다. 한발 내디딜때마다 1~2미터씩 미끄러지는데, 거의 굴러서 내려 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결국 넘어져서 그대로 언덕을 흘러내려 갔는데 눈이 많이 쌓인 상태여서 푹신하게 안착하는데 성공 했습니다.
남덕유산으로 올라가는 이정표쯤에 도착하니 제 뒤로 보이던 랜턴 불빛의 주인공들이 하나둘씩 도착 하시더군요. 그만큼 제가 진행 속도와 체력이 급격히 덜어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남덕유산 정상은 안 올라갈 수 없어서 일단 올라 갔는데, 엄청난 바람 때문에 정상석 확인하고 바로 삿갓재 대피소 방향으로 향합니다.
삿갓재 대피소 가는 길은 정말 이번 종주의 하일라이트 길이었습니다. 일출이 올라 오는 모습을 보면서 삿갓봉을 향해서 걸었습니다. 눈으로 덮인 산들이 빨간 색으로 물들면서 산이 불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이쁘더군요.
중탈하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삿갓재 대피소에 도착해서 아침을 먹으면서 고민을 했습니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든 상태이고 이미 평소 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은 상황이라 중탈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동엽령에서 뒤에 오는 안내산악회 대장님을 만난다면 안성탐방지원센터로 중탈하기로 맘 먹었습니다.
마음은 중탈을 갈등하고 있었지만 걷고 있는 동안 풍경이 너무 이뻐서 중탈하는게 너무 억울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무룡산 오르는데 10걸음 걸으면 1분은 쉬어야 하는 정도로 체력이 떨어졌습니다. 지금까지 등산하면서 이런적이 처음이라 너무나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산행 수준은 처음 산행하는 사람도 이보다 더 잘 진행할 수 있을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일단 오르막에서 1분 정도만 걸어도 숨이 안쉬어집니다. 예전 5천미터급 산에서 느꼈던 그 느낌이었습니다. 숨은 안쉬어지고 다리는 질질 끌려 가고.
동엽령에 도착 했을 때쯤에는 제 뒤에서 오던 분들은 이미 다 지나쳐서 가시거나 저랑 비슷하게 도착하는 몇분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대장님만은 안보여서 고민을 하다가 잠시 에너지 보충하고 일단은 진행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회원들이 하도 전화로 중탈 상담을 많이 해서 산행 진행을 포기하시고 대장님도 중탈 하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백암봉을 만났을 때 거의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계단을 올라 가는데, 풍경이 이 세상 풍경이 아니더군요.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멋진 풍경을 몇번이나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이나 사진으로는 그 아름다움이 표현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늘의 구름이 비행기 날아가는 속도로 흘러가고 있고 덕유산의 능선은 붓으로 그려 놓은 듯한 매끄러운 선들로 이어져 있는게 보입니다.
이미 몸은 만신창이 된 상태로 중봉을 넘어 향적봉 대피소에 도착 했습니다. 이 구간이 얼마나 이쁘고 얼마나 좋은지는 따로 이야기 할 필요 없을겁니다. 몸이 완전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도 입에서는 감탄사가 흘러 나올 정도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대피소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식사를 하고 최대한 하산을 빨리 해야 한다는 겁니다. 향적봉에서 백련사까지 거의 50분만에 내려 왔습니다.
저는 백련사에서 주차장까지 걷는데 30분이면 갈 수 있을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도 걸었던 길인데 사실 얼마나 걸렸는지 기억이 없었습니다. 몇번이나 왔던 길인데 한번도 시간에 쫓겨서 걸었던 적이 없어서 기억 할 필요가 없어서일지 모르겠습니다. 이날은 한시간 가까이 걷는데도 탐방안내소가 안나와서 결국은 대장님한테 전화해서 10분만 기다려 달라고 읍소를 하고 20분 가까이 도로를 뛰었습니다. 그렇게 뛰었는데도 3분이나 지각하고 간신히 안내산악회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종주 후기
이번 산행을 하면서 겨울 산행에서는 모든 변수를 예측 할 수 없고, 하나의 변수가 모든걸 바꿔 놓을 수도 있다는 걸 느껴습니다. 제가 산행하기 전까지 덕유산에 눈이 많이 온 상태에서 온도가 계속 낮은 상태로 유지되는 바람에 눈이 건설이 되었다고 합니다. 눈이 습기를 머금지 않고 푸석푸석한 상태로 유지되니 종주를 하는 저희들한테는 모래 사장을 걷는것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눈들이 많이 오다 보니 나무 위로 눈이 많이 쌓이고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무가지들이 전부 등로쪽으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이게 보기에는 이쁜 눈꽃이 핀 터널을 만들어 내는데, 걷고 있는 산객들은 전부 이 가지를 피해서 가야 되기 때문에 계속 허리를 숙이거나 기어가다시피 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허리가 끊어질듯이 아프더군요.
산에서 자신의 체력을 자만하면 안된다고 느낀게, 평소 감기를 잘 안걸리기도 하지만 감기 기운이 있어도 몸에서 열을 내는 운동을 해서 잘 넘기는 스타일이라 종주할 때도 힘들기는 해도 버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영하 15도가 넘는 산을 15시간 탄다면서 버틴다는건 제 체력을 뛰어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저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자만심에 빠져 있었던게 아닌가 하고 반성하게 되는 계기였습니다. 덕분에 산행 마치고 이틀동안 꿈쩍 못하고 몸살로 누워 있다가 간신히 살아 났습니다.
마지막으로 겨울은 먹을 수 있는 행동식이 제한되어 있기에 음식 관리를 잘 해야 되는데 이번에는 그 마저도 실패 했습니다. 겨울 종주시에는 아무래도 식사에 한계가 있다는걸 알고 있었고 그에 맞춰서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도 제대로 에너지 공급이 안되더군요. 결국 체력이 떨어지는데 일조를 한게 에너지 공급 실패도 큰몫을 한 것 같습니다.
위에 겪은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번 종주가 아마 평생 기억에 남지 않을까 생각 됩니다. 힘들기도 엄청 힘들었지만 덕유산이 보여주는 풍경 또한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오죽하면 평소 쳐다도 보지 않던 삿갓재 대피소마저도 이뻐 보일 정도로 풍경이 좋았습니다.
동엽령 이후 구간은 워낙 산객들이 많아지는 구간이다보니 번잡함으로 그 감흥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렇게 몰려든 산객들에도 불구하고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풍경이 이어졌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겨울에 육구종주를 하시겠다는 분이 있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겨울종주는 평소 종주할때보다 30%정도 더 체력이 소모되는데, 여기에 저와 같은 변수들을 만난다면 아마 더 힘든 상황에 부딪힐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종주 당일에 바람이 거의 불지 않은 상태여서 온도가 낮아도 산행하는데는 별 무리가 없었지만,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 산행이 진행되면 엄청 힘들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확실히 말씀 드릴 수 있겠네요.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꼬랑지. 영상은 유튜브에 올려 두었는데, 처참한 몰골이 등장하므로 여러분의 안구 보호를 위해서 따로 링크 걸지 않겠습니다 ^^
출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495998?od=T31&po=0&category=0&groupCd=#comment-po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