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결혼 원정기 – 2




순순히 잘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도 했고,

전날 백화점에서 한우 살 때부터 지금까지의 여정이 길기도 해서 꽤 지쳐있기도 했고,

아버님이 전에 놀러 왔을 때 성격이 극 마초의 상남자시기도 했고,

딸을 너무나 끔찍하게 여기시는 것도 몇 년간 봐왔고,

여자 친구도 이 부분에 대해선 타협의 여지 없이 벽을 쳤었기 때문에

쉽게 끝날 거란 생각은 안들었지만, 여기에서 어설프게 이야기 했다간 살아 나가기가 어려울 것 같단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이미 정신은 아득한데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입술에 정신을 불어 넣으며 의지를 담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몇 년을 사귀었고,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내가 다 알아봐 줄 정도로 물심양면 돕고 있으며 이건 진지하다..

머 이런 느낌인데, 사실 생각나는 건 없습니다. 입에는 메모리가 없습니다.

그저 사는 곳, 부모님 직업, 하는 일, 나이와 형제 관계 등을 격앙된 목소리와 위협적인 어조로 들었던 것과 그래도 준수하게 대답했단 생각을, 답을 하면서도 제법인데 하는 마음으로 점점 될 것 같다란 생각을 했다는 정도가 기억이 납니다.

어쩌다보니 여자친구와 먼저 나와, 금릉 해변을 걸으며 아직도 어색한 정장에 배낭이 거추장스러워 씩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내심 잘 되겠거니 했습니다.

먼저 해변을 씩씩하게 걷는 여자 친구를 쫓다가 구두 속으로 모래가 들어오는  걸 느끼면서,  기다려! 하면서 구두를 털고 해지는 모습에 먼저 걷는 여자친구가 곧 아내가 되겠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흐뭇합니다.

해가 질 때쯤, 다시 호출이 왔습니다.

한 횟집에 다시 모였고, 이번에 아버님 친구들 까지 한 다섯 분의 노신사분들이 못 알아듣는 사투리로 저를 구경합니다.

그 분들의 아내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또 그만큼 계십니다.

다시, 시작입니다. 호구조사를 시작으로 술잔이 오가고, 여기서 정신을 놓으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려 계속 잔을 비웁니다.

‘복받은거다, 너이’

‘어떤 똘인지, 여기선 다 안다’

‘머하는 아라?’

머 이런 사투리가 끝없이 이뤄지고 잡아주신 숙소에 잠을 청합니다.

아침이 밝자 다시 전화가 옵니다. 해장하자!

복어 매운탕에 또 한잔…

술을 좋아하긴 하니 버틸 만 합니다만, 답을 못들은 상태에 계속 술잔만 오고 갑니다.

이번엔 장모님까지 가족끼리만 먹는 식사자리.

“나는 공주 못 준다! 비행기 끊어줄테니 오후에 돌아가라”

청천벽력입니다.

뭔가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은, 그저 내 뇌피셜이었던 것이고 그러고 보면 아버님은 질문만 하셨지, 뭔가 이야길 하신 적은 없는 과묵한 ‘소나이’ 였던 것입니다.

일단 헤어지고 난 뒤, 돌아가는 건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눙칩니다.

온 김에 좀 관광이나 하겠다고, 아는 선배도 여기 사신다고…

일단 시간을 벌어봅니다만, 갈 데도 없습니다.

여자 친구 가족과 헤어지고난 뒤 애매하게 꾀죄죄한 몰골로 카페에 있는데, 여자 친구한테 연락이 옵니다.

어떻게 할 건지, 일단 돌아가라 하는데… 표가 없다고 일단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 제주도 사람들은 표가 없어도 새로고침 신공으로 어떻게든 비행기를 타는 게 익숙해서 그 말이 안통합니다.

그렇다고 물러날 수도 없어서 적당히 시간 끌고 씹다가…여자친구가 나옵니다.

집으로 가자..여자친구가 태우러 왔고, 못인기는 채 잡힙니다. (응?)

저녁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입을 믿지 않습니다. 그냥 듣고만 있습니다.

아버님이 과묵한 사람이 아니셨습니다.

어떻게 딸을 키우셨고, 아끼시고, 사랑하고,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자랑스러워 하시는 지를 무한반복으로 듣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여자친구에게 이 자식을 믿냐고 묻습니다.

“이 자식 카드 명세서 확인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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