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첨예 공동번영 시대 침몰
탈세계화에 중국 직격탄 수출 급감
中 경제 부진 세계 인플레이션 완화
연준 급한 금리 인하 ‘리인플레이션’
미국의 전설적 외교관인 헨리 키신저가 향년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고 있는 세계는 키신저가 20세기 후반에 구축한 거대한 유산의 결과다. 그는 공산 중국과 미국의 수교를 추진했고 중국을 세계 경제의 파워 하우스로 만드는 데 지대하게 공헌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서 시간이 갈수록 세계는 그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열강 간 힘의 균형을 통해 평화를 추구했던 그의 이상과는 달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으려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그 진앙으로 여겨진 중국은 미국을 위시한 서방 진영의 공격 타깃이 되었다. 거기에다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감싸고돌면서 세계의 중국에 대한 비난은 원한이 됐다.
중국 자체도 내부적으로 갈팡질팡했다. 공동부유에 바탕을 둔 부동산시장 안정책과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다 내수에 기반한 산업이 질식할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그간 경제성장을 이끌던 부동산 개발업체의 잇따른 부도로 금융자산의 부실화가 현안이 됐다.
이렇게 중국 경제가 침몰하면서 키신저가 추구했던 균형과 공동번영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있다. 빌 클린턴이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을 지지하면서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세계화의 조류도 급속하게 퇴색하고 있다. 오히려 탈세계화가 대세가 되고 있다.
중국경제는 그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올해 3월 3000억 달러를 넘어섰던 총수출은 지난 10월 2750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수출 물가는 연초 112포인트에서 지난 10월 90 포인트까지 하락했다.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의 수출품 물가가 무려 20%나 내렸다.
중국 경제의 부진은 세계 경제에 전방위적 영향을 끼친다. 제로 코로나가 끝나고 중국경제가 리오프닝 하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하리라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우디를 비롯한 OPEC(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의 감산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유가격은 배럴당 80달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역으로 그동안 인플레이션으로 힘들어했던 많은 나라들에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인플레이션이 빠른 속도로 꺾이면서 이들 지역에서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내에서 대표적 매파로 꼽혔던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가 물가가 잡히고 있다며 내년 상반기 안에 금리 인하에 나설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다른 연준 관계자의 발언에서도 경제와 물가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나고 있다.
사실 연준이 금리를 빠른 속도록 올리면서 어느덧 금리에서 인플레이션율을 차감한 실질금리가 플러스가 되었다. 과거의 예를 보면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상태에 있을 때 물가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실질금리가 플러스가 될 정도로 연준이 고강도 금리 인상에 나서고 나서야 물가는 겨우 잡혔다. 현재도 실질금리가 플러스가 되면서 물가가 한풀 꺾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서고 난 이후에 발생한다. 연준이 빠른 속도로 금리를 내리면 실질금리가 다시 마이너스가 되고 물가 상승 압력이 거세지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는 시중 유동성 증가로 이어져 자산 가격이 오르고 부의 효과가 발생하면서 가계 소비가 증가한다.
이렇게 수요가 늘어나면 기업들도 슬그머니 판매가격을 인상하면서 물가가 다시 오르게 된다. 이런 물가의 2차 스파이크는 1차 상승 때보다 거세게 진행되는 패턴을 보여준다. 소비자와 기업가의 심리에 물가 상승이 고착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제롬 파월 의장을 비롯한 연준의 정책 결정자들이 우려하는 바도 바로 급속한 인플레이션의 재점화를 뜻하는 리인플레이션(reinflation)이다. 물가상승률이 점차 줄어드는 현상을 뜻하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이 가고 리인플레이션이 오면 연준의 정책 수단은 현격히 제한된다.
이 단계에서는 가계와 기업의 체력이 상당히 약화된 상태라 연준이 다시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경제가 받을 충격이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 시점에 경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들 가능성이 커진다.
이 같은 우려로 인해 비둘기파 연준 인사들도 쉽사리 금리 인하를 입 밖에 꺼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금리인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이 미국의 내년 정치 일정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가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현역인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기는 바닥이다.
연준이 선거가 임박한 내년 하반기에 금리인하에 나서고 그 영향으로 자산 가격이 오르면 파월의장은 야당의 공격 대상 1호가 될 것이 뻔하다. 그런 측면에서 일부는 내년 상반기 이른 시기에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 예상하고 있기도 하다.
또 하나 연준을 갈팡질팡하게 하는 것은 ‘데이터에 기반한(data-driven)’ 정책 결정이다. 향후 발표되는 물가나 고용 등 경제지표를 보고 금리 인하나 인상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연준의 의사 결정 메커니즘이 연준을 항상 뒷북이나 치는 존재로 이끌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21년 인플레이션 재발 대책이었다. 물가가 급등하고 있었음에도 코로나로 인한 공급망 교란에 기인한 측면이 커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며 금리 인상의 타이밍을 크게 놓쳤다. 물론 그 결과는 엄청난 물가 급등과 달러 강세 그리고 금융위기의 고통이었다.
연준이 물가안정이라는 본연의 목표에 충실하려면 선제적으로 물가 잡기에 나서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준이 경기에 후행하는 각종 지표를 확인한 후에야 정책 변경에 임하겠다는 것은 돌다리를 두드리다 시간을 다 보내겠다는 것과 진배없다.
결국 제롬 파월의 앞에는 두 가지 길이 기다리고 있다. 첫째로 빠르게 금리를 인하해 물가를 자극한 뒤 또 금리 재인상에 나서 경기를 깊은 침체의 나락에 빠뜨리는 경우다. 경기 연착륙과 골디락스의 환상에 취할 경우 이 길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로 최대한 금리 인하를 늦추다가 그 부작용으로 미국 경제를 침체로 이끄는 경우다. 이 경우에도 경기가 침체로 가겠지만 침체가 보다 장기적으로 완만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물론 제3의 길도 있다. 연준이 선제적이고 현명하고 유연한 대처에 나서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 경제가 가는 길은 보다 순탄할 것이다.
출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news/18484115?od=T31&po=0&category=0&group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