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출장기 1,2

표지



몇 년 전에 인도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원래는 다녀와서 바로 후기를 쓰려고 했는데 천성이 게을러 그러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일기 대신 써두었던 메모들과 지금은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바탕으로 이제야 뒤늦은 출장기를 씁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잠깐 제 소개를 드리자면,  저는 대학 졸업 후에 국내 어느 제조업체의 IT 계열사에서 기술영업을 했었습니다. 입사 후 한동안은 국내 업체들만 담당하다가 대리를 달고 나서부터는 해외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모기업에서 인도에 새로 공장을 짓게 되면서 거기에 필요한 IT설비들의 납품 및 설치 업무를 저희 회사에서 맡게 되었습니다. 워낙에 규모가 큰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현지 법인과 본사가 협력하여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해외 업무에 초짜인 저를 혼자 보내지는 않았고  팀 선배인 김과장님이 저와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김과장님은 서울 강서구 사람으로 나이는 저보다 세 살 많았고 전공은 다르지만 저의 대학 선배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런저런 방황 끝에 대학을 9년 만에 졸업한 반면 과장님은 대학생활 4년 내내 한번도 휴학을 하지 않고 졸업과 동시에 입사했기 때문에 연차로 따지면 저와는 10년 가까이 차이가 났습니다.

과장님은 회사 안팎에서 일을 잘하기로 유명했고 성격은 쿨하면서도 강단 있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입사할 당시에는 저와 팀이 달랐지만 몇 번의 조직변경을 거치면서 같은 팀이 되었습니다.

회사를 다니는 5년 여의 시간 동안 저는 김과장님과 제법 친하게 지냈습니다. 둘이서 뭘 했다기보다는 같이 어울려 다니는 몇몇 직원들과 함께 대략 214번 정도 아침에 티타임을 가졌고 78번 정도 크고 작은 술자리에 함께했습니다. 저는 과장님이 아홉 번 정도 성난 사자처럼 분노하는 모습을 보았고(그중 한번은 저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스스로의 분에 못이겨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몇 번 보았습니다. 언젠가 아이폰이 싸게 풀렸을 때 회사에서 핸드폰을 바꾸려고 신청서를 쓰다가 과장님에게 들켜서 그녀의 핸드폰 또한 바꿔준 적도 있었습니다.

출발 당일, 저는 혹시라도 늦을까 봐서 탑승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앞서 먼저 공항에 나와있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다 슬슬 전화라도 해볼까 하던 차에 석자야! 하고 누가 저를 불러 돌아보니 과장님이 티셔츠에 웬 파자마 같은 바지를 입고 서있었습니다. 과장님 이 바지는 대체 뭔가요, 하고 물었더니 그녀가 씩 웃으며 장거리 비행에는 편한 옷이 최고라고 했습니다. 과연 과장님의 말이 맞았습니다.

우리는 인천공항에서 싱가포르를 경유해 목적지인 인도의 C시로 향했습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C공항에 도착하자 과장님이 잠깐 환전을 하고 가자고 했습니다. 환전소에는 젊은 남자 둘이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의 비행과 시차에 적응하느라 제가 멍하니 서있는 동안, 과장님이 헤이! 이러면서 환전소의 젊은 남자들과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알고보니 환전소에서 얼마를 삥땅치려 했던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제가 아는 과장님이 그런 것에 당할 리 없었습니다.

공항에서 나오자 뜨거운 인도의 햇살이 저희를 반겨주었습니다. 해외출장지에서는 보통 차를 렌트해서 직접 운전하고 다닌다고 들었던 터라 외국에서 운전을 하는 것에 대해 저는 조금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장님이 렌터카 업체에서 현지인 운전기사까지 보내주니 직접 운전할 일은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제가 왜 그러냐고 묻자, 과장님이 몰라, 차 타보면 안다네, 했습니다.

그리고 미리 인도에 나가있던 기술담당의 민차장님을 만났습니다. 민차장님은 김과장님과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분으로 저도 몇 번 술자리에서 뵈었던 터라 구면이었습니다. 민차장님은 밝은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데다 쌍꺼풀이 진하고 개구쟁이처럼 생겨서 나이에 비해 훨씬 어려보였지만 실제로는 저랑 띠동갑이었습니다. 그는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저에게 ‘여어’하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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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우리를 태우러 온 차를 찾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현지인 기사가 은색 도요타 옆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사는 180 정도 되는 건장한 체구의 남자로, 다른 인도 남자들처럼 콧수염을 살짝 기르고 있었습니다. 표정이 살짝 멍한 것만 빼면 발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콧날이 오뚝했습니다. 이름은 매니라고 했습니다.

매니는 반팔 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운전할 때는 아예 이 슬리퍼도 벗어버리고 맨발로 악셀과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그는 출장기간 내내 차를 몰면서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묻는 말에만 대답했고, 그것도 짧은 단어로만, 그것도 아니면 고갯짓만 했습니다.

이 고갯짓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하자면, 여기 사람들은 어떤 질문에 예라는 답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좌우로 몇번  갸우뚱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제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것이 알겠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가자 우리는 왜 인도 출장에서는 직접 운전을 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도로는 말그대로 카오스 그 자체였습니다. 중앙선을 기준으로 양쪽 차선에는 온갖 종류의 차들과, 삼륜차인 릭샤와, 오토바이와, 자전거들이 빽빽하게 뒤엉켜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경적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저는 처음엔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운전자들이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앞차를 추월하면서 경적을 눌러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인도에서 경적을 울리는 것은, 내가 뒤에 있고 곧 너를 추월하겠다, 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매니가 몰고 온 도요타는 수동이었습니다. 인도는 차선이 반대라 운전석이 오른편에 있었는데, 매니는 오른손으로는 운전대를, 왼손으로는 기어봉을 끊임없이 조작했습니다. 그리고 운전대를 잡고있는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은 언제든 경적을 누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호대기를 하는 중에 우리 차와 옆차 사이로 오토바이 한 대가 끼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순간 오토바이 운전자가 양 발을 우리 차와 옆차의 본네트쪽에 턱, 하고 올려놓고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매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와중에 민차장님이 창밖을 보다 갑자기 어엇, 저기 소다 소! 했습니다. 민차장님을 따라 옆을 보니 도로 옆으로 코끼리만 한 소가 느릿느릿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소는 도로 위 사정은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평온한 표정으로 마실을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뒤로는 떠돌이 개들이 무리 지어서 어딘가를 바삐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큰길로 나오자 이번에는 버스가 지나갔는데, 버스 주변에 몇몇 사람들이 매달려 가고 있었습니다. 너무 놀래서 제가 민차장님한테 아니, 저래도 괜찮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민차장님이 내가 물어봤는데 쟤네는 돈 안 받는 다더라, 했습니다. 과연 요금을 받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너무 위험해 보였습니다.

충격적인 첫 번째 드라이브를 끝내고 드디어 인도 법인 건물에 도착했습니다. 법인장인 안부장님과 법인 재무담당 최차장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 법인장님은 얼굴이 살짝 까무잡잡하면서도 인상이 좋은 분이셨습니다.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으셔서 그런지 우리를 반겨주는 와중에 어딘지 모르게 살짝 긴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최차장님은 법인장님보다 앞서서 주재원 발령을 받고 근무하시던 분으로, 전체적인 느낌이 배우 곽도원 씨를 연상시키는 분이었습니다. 이렇게 본사에서 주재원으로 와 계신 두 분과, 현지에서 채용한 한국인 직원이자 막내인 민석씨, 그리고 열 대여섯 명 정도 되는 인도 현지인 직원들이 인도법인에서 함께 일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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